Life Logging


내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는다

31/10/2020
전제가 다르면 결론도 바뀐다는 말은 그야말로 뻔한 이야기 처럼 들리고 굳이 할 필요 없는 충고를 모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 하다.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만 세계를 인식하는 법, 내가 파악한 조건 하에서는 그 결론이 엄밀하게 옳다고 보였을지라도 내가 파악하지 못한 혹은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하고 무시한 별 것 아닌 조건이 실은 내 주장을 우스운 농담의 대상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.

자기가 확신을 가진 주제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주장을 하는 회사 동료가 있었다. 세상 일이란 것이 어느 주장이 옳은지 다 해 볼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그럴싸한지 개연성을 서로 이야기 하며 논의를 하기 마련이다. 그런데 자신의 생각은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자기는 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그 무엇을 몰라서 그런 것이니 일단 자기의 말을 들어 보고 다시 생각해 봐라 는 스타일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었다.
이런 사람의 특징이 또, 자기 생각을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타인의 주장을 경청하고 거기서 목표 달성에 유용한 점을 찾아내는데 힘쓰기 보다 그 주장의 잘못된 점을 단순한 비유나 지엽 말단의 사실 관계에 대한 오류라도 찾아 자신의 주장이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같은 논의를 하더라도 동료들이 이 사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책 잡히지 않을 주장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. 그런 걸 의도했나 싶기도 하다 실은 비단 회사 일 뿐 아니라 최근 벌어진 온갖 세상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위 사람들에게 길게 늘어놓는 경우가 없지 않았고 다들 뭐 그러려니 하고 조금은 포기하고 살고 있었다.
그러던 중에 점심을 먹으면서 예의 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었다. 운전 면허를 취득하려 학원에서 연습을 시작했다는 말로부터 해 보니까 어떻더라 라는 감상이 이어지다가 결국 운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인트만 알면 쉽다 라는 긴 강의였는데 한참을 밥을 먹으며 듣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. 그때 그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분이 점잖게 한 말씀 하셨다.
누구 님, 여기 밥 먹는 사람들 중에 면허 없는 사람이 있겠어요?
내가 차 끌고 다닌 지 10년이 넘었어요, 그냥 밥이나 먹읍시다.
경험의 한계 라는 문제를 이만큼 극적으로 드러낸 경우를 처음 겪었던 터라 1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.

생각해 보면 이런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 된 교훈으로 삼아 대상에게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행위가 바로 요즘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
Latte is a horse - 나 때는 말이야
이야기와 동일한 구조구나 싶다.
이 이야기가 생각난 건 몇달 전 스쳐지나간 웹진에 실린 누군가의 페이스북 글 때문이었다. 내용인 즉슨,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좀 퍼지니 요즘은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신이 아는 누구는
  •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'신입생이 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법' 을 발표하고
  • 신입 사원일 때는 '취준생에게 쓰는 나의 취업 성공기' 를 밖에서 이야기 하고 다니더니
  • 몇 해 지나 퇴사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번에는 '퇴사 잘 하는 법' 을 강의하고 다닌다며
혀를 차며 한탄하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.
장자에 이르기를
夫以出乎衆 爲心者 何嘗出乎衆哉 - 무릇, 남에게 뛰어난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 어찌 진정으로 남보다 나은 자이겠는가
라고 했다. 기원전 300년 부터 이미 인간의 자신에 대한 과신이 잘 알려진 폐습이었건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21세기가 한참 진행 중인 지금까지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