책을 읽는다는 것
11/08/2019
서양 속담에 "늙은 개는 새로운 재주를 배우지 못한다" 란 말이 있다. 이와 비슷한 취지로 탈무드에서 "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은 백지에 쓰는 것과 같다. 노인은 이미 가득 쓰여진 종이에 무언가 덧붙이려 하는 것과 같다." 란 말도 기억난다.
맥락없이 늙은이 드립을 치는 이유는 올해 들어 책을 읽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. 지금껏 살면서 글을 읽는 것은 숨쉬는 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작년 연말부터 갑자기 눈 가가 붓거나 비늘처럼 일어나고 눈의 초점이 잘 맞지 않고 피곤하며 무엇보다 안경을 쓰고서도 글자에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. 혹시 눈에 무슨 이상이 있나 해서 안과를 세 곳이나 바꿔가며 눈가가 붓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호소했으나 다들 "안압은 정상입니다. 눈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니 피부과에나 가 보세요" 로 별 것 아닌 증상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취급하여 의료 보험으로 병원 쇼핑이나 다니는 심기증 환자 취급이나 당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. 찾는 병원마다 정상이라고 하니 별 다른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때 마다 30초에 눈을 찡그리고 5분 지나면 천장을 바라보고 숨을 돌리면서 힘들게 글자를 읽어야 했다.
한 두 달쯤 전에 얘 안경 테가 삐뚤어진 것을 조절하려 안경점에 들렀다가 혹시나 해서 요즘 가까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라고 했더니 간단한 검사 후 바로 노안 판정을 받았다. 사실 내심으로 노안이 와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. 하지만 차마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안경을 새로 맞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어떤 계기 로든 안경점에 들어서고 보니 잘 안 보이는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결심이 설 수 있었나 보다. 다행이 다촛점 렌즈까지는 쓰지 않았고 도수만 조금 낮춰서 가까운 것이 보이게 하는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. 생각해 보니 뭐 다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,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경의 도수를 낮췄다. 착용한 안경 렌즈의 도수가 눈이 어두운 척도임을 받아들인다면 멀리 있는 것이 조금 덜 보인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어쨌든 눈이 좋아졌다!
이런저런 소동이 있었지만 결국 가까운 것이 다시 잘 보이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제 책을 다시 마음 놓고 편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싶었는데, 이젠 갑자기 책에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. 사십 여년 만에 드디어 책장 앞에서 책을 뽑기가 두려워지고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아무리 돌아 보아도 마음 가는 책이 없다. 물론 올해 초 두 번째 책을 내면서 당분간 글 쓰기는 잠시 잊어버리고 쉬어야지 란 생각은 하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네 개 성상 이어온 습관이 여반장으로 표변할 줄이야 미처 몰랐다. 네 개 성상 이라 써 놓고 보니 왠지 명, 청 시대 과거에 떨어지다 못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비슷한 패거리들과 술이나 퍼먹는 녹림의 일당이 된 것 같다.
책을 많이 자주 꾸준히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. 독서로 이름 높았던 이탈리아의 베니토 선생은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과 니체의 초인 사상을 기반으로 결국 자신의 파시스트 사상을 만들어 일 두체 무솔리니가 되었고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어느 경영자는 1주일에 책 2권 이상 읽는 회장님… "직원들도 독후감 1년에 6번 내야" 사실 30년 이어온 독서 경영으로 칭송 받은 게 얼마 안 된다.
이미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터라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될 텐데 란 압박감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. 다만 몇 년 전부터 전에 없던 허리가 아프다든가 그래서 제 손으로 양말을 못 신는 처지가 된다든가, 어처구니 없게도 눈이 좋아져 안경 도수를 낮춰야 한다든가 란 일이 자꾸 생기는 것도 서러웠는데, 그나마 지금껏 꾸준히 즐겨 왔던 독서 라는 도락 마저 내 나이와 육체 능력에 넘치지 않도록 조절해가며 즐겨야 하나 생각하니 전과는 다른 서늘하고 에인 느낌이 가슴 아래를 꾹 누르고 지나간다.
이미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터라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될 텐데 란 압박감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. 다만 몇 년 전부터 전에 없던 허리가 아프다든가 그래서 제 손으로 양말을 못 신는 처지가 된다든가, 어처구니 없게도 눈이 좋아져 안경 도수를 낮춰야 한다든가 란 일이 자꾸 생기는 것도 서러웠는데, 그나마 지금껏 꾸준히 즐겨 왔던 독서 라는 도락 마저 내 나이와 육체 능력에 넘치지 않도록 조절해가며 즐겨야 하나 생각하니 전과는 다른 서늘하고 에인 느낌이 가슴 아래를 꾹 누르고 지나간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