English the happy way.
04/07/2020
원래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. 영어라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성문 기본 영어를 좀 열심히 봤다 정도고 그 이후로 영어를 열심히 한 기억은 없다. 물론 대학 때나 이후 일하면서도 꾸준히 영어로 쓰여진 책을 읽어야 했지만 수학이나 CS 관련 책을 아무리 읽었다 한들 "Cash or charge" 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리가 없다.
2년 전에 싱가포르로 여름 휴가를 갔었다.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 이유가 범상하지 않는데, 얘의 초등학교 친구가 아버지 직장 관계로 싱가포르 이민을 갔고 다들 국민학교 다니던 옛날 생각으로는 한 번 놀러 오라는 편지나 몇 번 오고 가다 슬며시 소식이 끊어지는 게 자연스런 전개였겠지만 카톡 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무장한 현생 초딩들이 매주 영상통화로
2년 전에 싱가포르로 여름 휴가를 갔었다.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 이유가 범상하지 않는데, 얘의 초등학교 친구가 아버지 직장 관계로 싱가포르 이민을 갔고 다들 국민학교 다니던 옛날 생각으로는 한 번 놀러 오라는 편지나 몇 번 오고 가다 슬며시 소식이 끊어지는 게 자연스런 전개였겠지만 카톡 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무장한 현생 초딩들이 매주 영상통화로
"언제 놀러올거야?"를 양쪽 부모 앞에서 반복해서 시전하는 바람에 그 해 여름 휴가지로 싱가포르 외엔 다른 선택지가 모두 소거되어 버렸다. 어쨌든 그해 여름 싱가포르로 가게 되었고, 이런 저런 곳을 관광 겸 해서 돌아다니다 갑자기,
"이번 휴가 때 간데."
"그때 우리 꼭 만나자"
어, 잠깐만, 내가 영어가 좀 되는데?란 느낌을 받았다. 이제 오래 살다 보니 저절로 인생 짬이 쌓여 영어로도 대충 소위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었구나 싶었다. 그러다 보니 더욱 더 자신감 넘치게 무언가를 더 말하게 되었고 별 무리 없이 원하는 바를 얻은 것 같아 약간의 뿌듯함 까지 느꼈던 것 같다.
돌아오는 비행기는 저녁이었고 호텔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1시라 마지막 날 시간이 좀 남았다. 그 동안 근처 박물관에 들러 보기로 했는데 그제서야 묵었던 호텔 체인에서 발급하는 마일리지 카드를 만들면 박물관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 그래서 호텔 로비 한 켠에 마련된 부스에 들러 늦게나마 카드를 만들기로 했고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그렇지 10대로 착각할 정도로 어리게 보인 여성 접수원에게 상황 설명을 한 후 그 사람에게 건내 받은 신청 서류에 내 신상정보를 한참 끼적이며 적던 중이었다. 집사람이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이걸 먼저 만들었으면 어제 저녁 먹었던 음식점에서도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었다며 늦게나마 이걸 마일리지 카드에 넣어달라고 해보라고 했다. 평소 같았으면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
아니 뭐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이제 영어가 좀 되기 때문에 호기롭게 application form 을 submit 하면서 "내가 오늘 11시에 체크아웃을 했다. 그리고 지금 마일리지 카드를 신청하고 있다. 그런데 이번 주에 내가 이 호텔 체인에서 쓴 비용이 있다. 이 사용에 대한 마일리지를 카드에 넣어줄 수 있는가" 라고 떠듬떠듬 말했다. 그랬더니 이 사람이 약간 미안한 듯 웃으며 뭐라뭐라 했는데 사실 잘 못 알아 먹었다. 이 정도 되면 대충 약간 부끄러운 듯 빙긋 웃으며
OK, Thank you.라고 답하면서 대화를 급히 끝내고 주위를 둘러보며
안 되나 봐라고 깨끗이 포기함이 난-네이티브-스피커의 마땅하고도 바람직한 예의라 하겠지만 "이제 영어가 좀 되기 때문에" 이 사람에게 다시
내가 당신이 한 말을 잘 못 알아먹었는데, 네가 한 말이 마일리지 카드를 만들기 전에 사용된 것은 적립해 줄 수 없다 라는 이야기냐라고 다시 물어 볼 수 있었다. 그랬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한숨을 푹 내쉰 후 날 보며 또박또박,
"방금 내가, 네게, 그렇게 말, 했잖아."라고 하는 게 아닌가.
아아, 선생님, 갑자기 그렇게 명치를 후려 갈기시면, ...

